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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이야기

발해의 건국과 발전

by YOBOX 2025.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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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건국 당시 상황을 묘사한 이 이미지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에서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장면을 재현한 것입니다.


발해의 건국과 발전은 고구려의 계승 국가로서 동북아시아의 중심 강국으로 부상한 역사적 사례입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멸망 이후 등장한 국가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중심으로 건국되었으며,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독자적인 정치, 문화, 외교 체계를 형성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발해의 건국 배경, 정치 체제, 대외 관계, 전성기와 멸망 등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건국 → 체제 정비 → 외교 확대 → 전성기와 쇠퇴로 이어지는 발해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며, 한국사와 동아시아사에서 발해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보다 입체적으로 정리합니다.

1. 발해의 건국

  • 건국 시기: 698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에서 건국.
  • 건국 배경: 고구려가 668년 멸망한 후, 당나라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지배하려 하였으나, 고구려 유민들은 각지에서 독립적 세력을 형성하며 저항했습니다. 대조영은 말갈족과 연합하여 천문령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독립 기반을 확보했습니다.
  • 초기 국호와 변경: 초기 국호는 '진(震)'이었으나, 713년 당과의 외교 관계 수립 후 '발해'로 국호를 변경.
  • 고구려 계승 의식: 발해는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계국으로 자처했으며, 제도와 문화에서도 고구려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었습니다.

핵심 정리

  • 건국자: 대조영 (고구려 계승 의식)
  • 건국 연도: 698년
  • 건국 장소: 동모산
  • 성립 과정: 고구려 유민 + 말갈 연합 / 천문령 전투 승리


2. 통치 체제와 내부 정비

  • 지방 통치 체계 - 5경 15부 62주: 중앙의 수도를 포함한 5경 체제를 통해 전국 주요 지역을 연결하고,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구역을 통해 광대한 영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했습니다.
  • 중앙 정치 - 3성 6부제: 당나라 제도를 수용했지만, 발해식으로 독자적 운영. 행정 권한은 정당성(중앙 최고 행정기관)을 중심으로 집중되었으며, 중대성은 정책 입안, 문하성은 심의와 감찰, 좌우사는 명령 전달과 집행 등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체계적으로 정비되었습니다.
  • 사회 구성: 고구려 유민 중심의 지배층과 말갈족 등 다양한 민족 구성원의 통합이 이루어졌으며, 말갈 출신 인사들의 행정 참여와 혼인 정책을 통해 실질적인 사회 융합이 추진되었고, 귀족 사회 중심의 정치가 유지되었습니다.
  • 문화 융성: 유교와 불교를 수용하고 발전시켰으며, 발해만의 독자적인 고분 형식(굴식 돌방무덤 등)과 도자기 문화도 존재했습니다. 벽화 고분 등에서는 고구려 문화의 잔재가 확인됩니다.

핵심 정리

  • 지방 행정: 5경 15부 62주
  • 중앙 정치: 3성 6부제, 정당성 중심 운영
  • 사회 통합: 고구려 유민 + 말갈 + 기타 북방 민족
  • 문화 특징: 고구려 + 당 융합 / 독자적 고분 문화


 

 

 

 

 

3. 발해의 대외 관계와 외교 정책

  • 당나라와의 관계: 건국 초기 천문령 전투를 통해 대립했으나, 이후 당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조공무역을 통해 문물을 수용했습니다. 사신 파견이 잦았고, 발해인들은 과거시험에도 응시했습니다.
  • 신라와의 관계: 발해와 신라는 한반도 북부 지역을 두고 군사적·정치적 갈등을 벌였으며, 상호 사신 왕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적대적으로 인식하며 통일 이후에도 정치적으로 단절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 일본과의 교류: 일본과는 활발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사신을 최소 5회 이상 파견했고, 해상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발해 사신은 일본에 조공품을 전하며 발해의 문화와 국력을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 말갈과의 관계: 흑수말갈 등 여러 말갈 부족을 복속하거나 자율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으며 북방을 안정시켰습니다. 발해는 말갈 지역을 행정 구역으로 편입하기도 했습니다.

핵심 정리

  • 대당 관계: 충돌 → 외교 수립 / 문화 수용
  • 대신라 관계: 세력 경쟁 / 외교 단절
  • 대일본 관계: 사신 교류, 무역 활성화
  • 대말갈 관계: 복속 및 연합


4. 발해의 전성기와 멸망

  • 전성기 - 선왕(818~830): 선왕 대에 흑수말갈을 정복하고 요동·연해주·두만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 발해는 최대의 판도를 형성했습니다. 이 시기를 '해동성국'이라 칭하며, 이는 일본 측 외교 문서에 등장한 표현으로 발해가 문화와 국력 면에서 중국 못지않은 강국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며, 동아시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 국제적 위상: 일본과 당나라에서 발해를 하나의 독립된 강대국으로 인정했으며, 문화와 문물의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당의 지방제도, 불교 사상, 유교적 정치 이념 등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자국 문화의 독자성을 유지했습니다.
  • 멸망 - 926년: 거란의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침공하여 멸망시켰고, 일부 유민은 남쪽으로 이주하여 고려에 편입되거나 독립 세력을 조직했습니다. 발해 왕족 일부는 고려 왕건에게 귀부하여 후속 정권 형성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핵심 정리

  • 전성기 왕: 선왕 (818~830)
  • 최대 판도: 요동, 연해주, 길림 포함 동북아 최대 강국
  • 멸망: 926년 거란의 침입
  • 유민 동향: 고려 편입, 독립 저항 지속


마무리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서, 다양한 민족의 통합과 고유한 정치·문화 체제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고대 국가였습니다.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당의 선진 문물을 융합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유교·불교·과학기술 등 다방면에서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비록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했지만, 그 유산은 이후 고려와 조선에도 영향을 주며, 예를 들어 고려의 5도 양계 체제나 문벌 귀족 중심의 관료제도 등은 발해의 지방 통치 및 행정 조직의 영향을 받았고, 문화적으로도 불교 중심 사상과 고분 양식이 이어졌습니다. 우리 민족사에서 잊을 수 없는 중요한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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